맨 발로 물 위를 걷는 긴 행렬의 사람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이는 10년 주기로 열리는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 2017)1)에서 관객들이 작품을 체험하는 모습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조각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특히 위의 작품은 터키 출신의 작가 아이제 에르크만(Ayşe Erkmen)의 <On water>라는 작품으로, 폐기된 운하에 컨테이너를 가라앉혀 관객들이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경험을 유도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On Water>는 전통적인 미술관의 폐쇄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일상을 예술의 전시 공간으로 확장한 형태의 작품입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미술작품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듯, 전시 공간의 형태와 전시방식 또한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처럼 주위 환경에 녹아들며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예술품 전시 형태는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전시 공간은 어떻게 탄생했고 언제부터, 왜 전시 공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예전에 미술관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요? 또 이처럼 미술 전시 공간이 일상으로 확대되는 데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은 무엇일까요?
수집 공간의 등장 : 전시 문화의 시작
Studiolo of Francesco I, 1570-1572, Palazzo Vecchio
미술관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형태의 전시 공간은 르네상스(Renaissance)2) 시대부터 형성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중세시대 암흑기를 극복하기 위해 14세기경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고대의 부활을 도모하는 새로운 사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 미적 감각과 함께 개인 소유의 개념이 형성되면서 유럽의 부호들은 지금의 갤러리(gallery)의 형태과 유사한 ‘스튜디올로(Studiolo)’라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철학자들의 초상화와 부조 등이 진열되었던 스튜디올로는 폐쇄적인 형태의 인문학적 사유(思惟)공간이었습니다.
스튜디올로 이외에도 현재의 갤러리(gallery)의 이전 형태를 대표하는 공간으로는 캐비닛(cabnet), 분더캄머(Wunderkrammer), 그리고 갤러리아(galleria)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들은 르네상스의 절정기가 막바지에 이른 15세기, 동방 육상교역로의 개방과 북미 대륙이 발견되면서 미지의 대륙에서 온 이국적인 물건들을 수집하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유행과 더불어 형성되었습니다. 라틴어 ‘cavea’에서 유래한 캐비닛은 수집품들을 진열하기 위해 칸막이들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가구를 지칭하다가 점차 장식적 오브제들을 모으는 작은 공간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경의의 방’이라는 뜻의 분더캄머는 진기한 물건들을 수집하던 방으로, 소장품들은 소장가만이 알 수 있는 나름의 규칙에 따라 진열되었습니다. 현재 갤러리의 어원으로 여겨지는 갤러리아는 오늘날 전시 공간과 가장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갤러리아는 보여주기 위한 기능이 강조되어 주로 화려한 응접실 옆에 위치했으며, 소장품들은 일정한 규칙 없이 단순한 시각적 배열에 따라 배치되었습니다. 귀족들 사이에서 긴 홀에 전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유행하면서 갤러리아는 16세기 말부터 소장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유지되었습니다.
혁명의 시대, 전시 공간의 성격을 뒤엎다
17-18세기 서구 세계는 16세기에 시작된 과학혁명3)과 계몽사상으로 인해 합리성을 중시하는 과학적인 사고가 지배적이었으며, 이에 따라 전시 공간도 변화를 겪게 됩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계몽주의에 따른 예술의 교육적 가치에 대한 재조명과 18세기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맞물려 파리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이 1793년 대중에게 열린 공간으로 개관했습니다.
과거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모습 (좌) Hubert Robert, <Projet d’aménagement de la Grande Galerie du Louvre en, 1789 (우) Hubert Robert, Projet pour la Transformation de la Grande Galerie du Louvre, 1796
초기 루브르 박물관은 큰 작품들을 중앙에 두고 작은 작품들은 그 주위를 에워싸는 형태로 벽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와 같은 전시 방식이 사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감상하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파리 살롱의 영향을 받아 천장에까지 작품을 가득 채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과학적 전시 방식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작품이 걸리는 벽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당시 푸른색이 심리학적으로 교육적 효과가 있다는 믿음에 따라 벽은 녹색 천을 사용했습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작품의 품격을 높이는 일환으로 금색 액자를 사용하했데, 녹색 벽 대신 금색과 잘 어울리는 빨간색 벽을 사용하면서 시각적 조화를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새롭게 열린 예술의 세계에 대중은 열광했고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들의 방문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습니다. 이에 따라 박물관도 소장 작품의 수를 늘렸습니다. 그러나 관객과 작품의 수가 증가되면서 이동이 어려워지고 작품 간의 간격이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등의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그로 인해 벽을 빼곡히 채우는 전시 형태가 예술작품 감상에 방해가 된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더니즘의 산물, 화이트 큐브의 도래
기존의 전시 방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작품을 눈높이에 맞게 배치하는 실험적인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이 새로운 방식에 따라 자연스럽게 벽면 당 전시 작품의 수가 줄면서 가려져 있던 벽면이 드러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벽의 색과 구조가 주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논의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전시 공간의 벽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생겨난 20세기에는 시대발상적이고 현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모더니즘(Modernism)’ 이념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전통에서 탈피한 예술작품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부각되면서 과거의 인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예술적 시도가 이어졌고, 모더니즘이 추구하는 순수성, 절대성, 종교와 법 등의 개념과 맞물려 ‘흰색’이 작품을 드러내는 가장 적합한 색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흰 벽이 돋보이는 전시공간 Photo by. Beaumont Newhall,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Cubism and Abstract Art,” on view at The Museum of Modern Art》, 1936 | The Museum of Modern Art Archives, New York.
흰 벽을 사용하는 전시 방식은 예술비평가인 브라이언 오 도허티(Brian O' Doherty, 1928 - )가 1976년 <하얀 입방체 내부에서 (Inside the White Cube)>이라는 글을 발표하며 ‘화이트 큐브(White Cube)’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됩니다. 도허티의 의하면 화이트 큐브적 공간은 교회가 지닌 신성성, 법정이 지닌 형식성, 실험실에서 풍기는 신비성이 시각화된 이데올로기적 장소를 가리킵니다. 미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의 최초 큐레이터 알프레드 바 주니어(Alfred H. Barr, Jr, 1902 – 1981)의 1936년 전시 <큐비즘과 추상미술(Cubism and Abstract Art)>은 화이트 큐브적 전시를 시각화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허티의 화이트 큐브 개념은 흰 벽으로 이루어진 입방체의 근대 전시장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전시 공간의 확장과 미래
창조성과 순수성을 추구하던 모더니즘은 점차 예술을 신격화하기에 이르렀고 당대의 예술은 보수적으로 퇴색되었습니다. 화이트 큐브 역시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신성화시켰다는 평을 받으며 사회 체제에 순응하는 경직되고 세속적인 장소라는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그 결과 화이트 큐브의 경직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은 모더니즘적 보수성과 흑백 논리에 대항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시대가 도래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화이트 큐브 안에서의 예술작품 소통 방식에 한계를 느낀 예술가들은 예술과 현실의 간극과 경계를 허물고자 다양한 시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앞서 살펴봤던 독일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화이트 큐브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한 시도의 일환이었습니다. 1977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시민들에게 미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현대 예술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 예술계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큰 관심을 갖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녹아든 예술 작품들 덕분에 뮌스터에서는 작품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실제로 무엇이 미술이고, 미술이 아닌지 추리하게 되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공간이 전시장으로 바뀌는 파격적인 시도 또한 나타났습니다. 스위스 출신의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1968 - )는 1991년 <The Kitchen Show>에서 자신의 부엌에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여 정형화된 공간과 그 유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전시 공간에 음식을 등장시켜 관람객은 음식의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는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를 경험하였습니다. 울리히는 이어 1993년 <Airline Project>라는 제목으로 예술가가 만든 퍼즐 조각을 항공사 승객들에게 나눠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화이트 큐브가 지닌 폐쇄성을 극복하고 관객의 참여와 경험으로 완성되는 새로운 예술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기능적 경계를 허무는 전시 형태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9월 연남동 게스트하우스에서 열린 <하우스 아트페어 2017>은 집에서 편안하게 감상하는 전시 형태로, 관람객들은 마치 내 집처럼 침대에 눕거나 소파에 기대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위) 통의동에 위치한 보안여관 (아래) 다양한 장소를 이동하는 The Traveling Museum
기존 공간을 복원하여 사회 환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서울 통의동에 위치한 보안 여관은 약 80여 년 동안 여관으로 유지되다가 2007년부터 생활 속에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생활밀착형 예술을 생산하는 문화생산 아지트’를 표방하는 보안 여관은 전시 뿐 아니라 강연, 워크샵, 책방 및 카페 운영을 통해 사람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였습니다. 이제는 통의동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 젊은이들의 발길을 끄는 인기 명소가 된 보안 여관은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 곳에 새로운 기능을 불어넣어 지역의 활기를 되살리는 공간으로서의 역할,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았습니다. 기존의 공간을 활용한 보안여관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미술관도 등장하였습니다. 2014년 시작된 미국 미네소타 주 뉴런던의 ‘트래블링 뮤지엄(The Traveling Museum)’은 이동하는 형태의 미술관으로, 평소에는 작가들이 입주하여 작품을 창작하는 스튜디오로 쓰이다가 작품이 완성되면 지역 내를 이동하면서 전시를 펼칩니다. 이러한 공간은 미술관이 놓이는 장소에 따라 다른 맥락으로 존재하며 감상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픈갤러리 홈페이지와 거실에 작품을 설치하여 미술관처럼 꾸민 가정집의 모습
미술관의 경계가 허물어짐에 따라 이제는 집에서도 미술 작품을 설치하여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지 않고도 편안한 작품 감상이 가능해 졌습니다. 예술은 더 이상 상류층만의 소유물도, 어렵거나 난해한 다른 세상 이야기도 아니게 된 것입니다. 위 사진의 오픈갤러리에서는 다양한 층에 이르는 국내 작가의 작품을 약 13,000점 가량 보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클릭 하나로 실제 작품을 렌탈, 구매는 물론 설치까지 할 수 있도록 구성하여 일상 공간에 특별함을 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미술사적으로 유의미한 전시 공간의 변화와 함께 그 변화의 요인에는 어떤 사건들이 작용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초기의 전시 공간은 수집과 과시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수단에서 시작하여 화이트 큐브의 폐쇄적인 형태로 이어졌으나, 진보와 혁명을 거듭하며 관객과 소통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경험 중심의 전시 형태로 변화하였습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는 변화를 거쳐 온 전시 공간은 이제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일상과 경험이 예술이 되는 시대 속에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전시 공간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 1859 – 1952)는 예술이 곧 경험이고 경험이 곧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현재의 예술을 발전시키고 색다른 전시 공간을 만들어내는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전시 공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지속하는 것 또한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지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당신의 주변에 어떠한 재미 있는 전시가 일어나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용어해설
1)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 독일의 작은 도시인 뮌스터(Münster)에서 10년에 한 번 개최되는 세계 최고의 공공미술 행사로, 1977년부터 시작되어10년 주기로 도시 전역에서 펼치는 조각프로젝트이다. 2017년에는 6월 10일에서 10월 1일까지 진행되었다.
2) 르네상스 : 14∼16세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유럽 전반에 나타난 문화운동으로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암흑기라고 여겨진 중세에서 탈피하고자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하고자 하였다.
3) 과학혁명 : 주로 형태적 기준에 근거한 자연적 관계에 의한 생물의 분류 학문으로, 생물의 분류체계를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물학의 한 분과로 많은 종류의 동식물을 다루면서 생겨났다. 자연 또는 진화 계통에 따라 배열하는 분류학이 발달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
4) 포스트 모더니즘: 일반적으로 모더니즘 이후의 서양의 사회, 문화, 예술의 총체적 상황을 일컫는다. 모더니즘의 이성중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다원성’, ‘해체’ 등의 개념으로 모더니즘에 반기하는 사상적 경향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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